일상과 생각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톨스토이 - 부제: 모태신앙인 내가 복음 전도를 받은 후에 달라진 것들

jeanson 2015. 10. 9. 23:5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포스팅은 독후감 글은 아니다.  그냥 제목만 가져다 썼다2015 Preview 글에서 이러이러한 주제의 글을 쓰겠다고 언급한 내용을 6개월만에라도 어서 이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말만 앞서고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건 싫으니까그래서 오늘 쓸 주제가 '3. 모태신앙인 내가 복음 전도를 받은 후에 달라진 것들인 것이었다

 

, 명예,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런 뻔한 얘기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강제적으로 머릿속에 심어주고 싶지는 않다. 다만, 글을 써내려가면서 생각의 흐름 과정을 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은 꽤 1여년 동안이나 곱씹어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언제부턴가,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 자문해왔었다는 것을 잊고 살아왔었다. 바빠서 그랬나?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무엇'이라는 명사를 카테고리로 나누면, 눈에 보이는/셀 수 있는/만질 수 있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추상적인/사고와행동과 관련된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자: 눈에 보이는/셀 수 있는 것/만질 수 없는 것.  tangible 이란 뜻을 유형의, 라고 표현하는데 유형의 라는 말은 좀 딱딱하게 들리니까 영어로 tangible이라고 표현하자. 후자는 intangible이겠고

 

tangible한 무엇은 뭐가 해당할까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돈이 있어야 맛있는 것도 먹고 멋진 옷도 사입고 차도 사고 잠잘 집을 살 수 있으니까

intangible한 것은 열정? 욕심? 욕망? 자존심? 신념? 권력? 비전? 관계? 사랑? 가족? 이러한 것들을 크게 묶으면 감정과 사고라 할 수 있겠다

딱 봐도, intangible 쪽이 많아 보이는데 두 분류로 나누고 감정과 사고라고 답이 도출되게 만드는 것은 나의 '관점'이자 '가치'인 것 같다.  이 관점과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27년 살아온 환경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나의 인격, 부모님이 물려주신 기본적 성향 성품, 여기에 사회적, 일반적, 도덕적 상식과 쌓아온 지식이 더해져 아침서 눈을 뜨면서부터 집으로 돌아와 이불 덮고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매순간 관찰생각, 분석판단, 결단, 그리고 적용의 순환 활동을 한다그리고 때론 이런 순환 활동으로도 나의 관점을 나도 모르겠고 내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예전 같았으면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전이었을 때라면, 매일밤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끙끙대면서도 어떻게든 돌파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발악했겠지만, 하나님을 만난 지금은 오히려 감정과 생각 모두 무중력 상태인 느낌이다.  흩어진 감정들, 생각들이 손에 잡혀지지 않는다.  

지친걸까. 내려놓은 걸까.  

살면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밖에는 없다고, 내겐 힘이 없다고 마음속으로 나지막히 내뱉게 된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기도가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명확하게 설명을 못하겠다.  교회에서 전도사님,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나 같은 교인인 지인들이 기도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알려주지만, 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각자 만나는 하나님이 다르듯,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 내용이 다르듯기도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필요하다.  나에게 기도는 무엇인가.

단순히 알라딘의 지니 램프처럼 소원을 들어주게 하는 주문인 것인가.  허공에다 해대는 나의 독백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나의 물음에, 나의 모든 희로애락 감정들과 깊거나 짧은 생각들 하나하나 모두 응답을 주실거라는 확신으로,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낙심하지 말고 덤덤히 나의 무능을 인정하고 마음속에 요동치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있는대로 표현하는 것이다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글 참조)

 

 

하나님께 나를 온전히 맡길 때 나의 생각, 판단, 욕심이 없어진다.  나의 관점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바뀐다. 

그래서 때론 내가 바보가 된 것 같고 무기력해지고 포기했다고 느껴지지만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에 이런 말씀구절이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마태복음 6:27-28).

 

염려는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만 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여 주시는 대목이다.  나의 마음이, 나의 영혼이 이렇게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조바심은 내 하루를 그날의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도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고그러니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내가 해야할 일들을 하면 된다.  염려는 아무 것도 달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아니 불과 몇 분 후에라도 내가 초조해지고 염려해한다면 그때마다 또 기도하면 된다고.  오래참음과 침묵으로 간구하여 더욱 확신을 얻기를 소망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내가 찾은 답은 기도이다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표현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을 지향하며

다음 글은 

4. 창업에 대한 자세 - 부제: 재능과 연결된 소명을 찾아서 

에 대한 내용을 블로그에 담고 싶다.  

2015/10/09  11:5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