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차창만 바라봤다.
벌써부터 그 웨이터 얼굴이 자세하게 기억이 나질 않아 마음이 철렁했다.
사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미간을 찡끄리고 계속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는, 하얀 와이셔츠, 검정색 바지, 나를 바라봐줬을 때의 표정, 눈빛..굳게 다문 입, 약간의 미소를
오랜 생각 끝에 1초 정도의 시간으로 압축한
실루엣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졌다.
잃어버리지 않으려 그 이미지를 계속 반복해서 떠올렸다.
안전벨트를 메고 비행기 좌석 스크린을 잠깐 멍하니 쳐다봤다. 아직 이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까페에 가지 못하겠네, 내일도 못가겠네, 그다음 하루도.
떠나기 싫었다
아니 아주 조금만 더 머물고 싶다.
하지만 이틀, 사흘, 일주일 더 있다 떠난다고
싹 뒤돌아서 잊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누군가를 마음껏 보고 싶다, 눈을 마주치고 싶다, 얘기 나누고 싶다
유학생이 하는 지금 이 말을, 당신은 이해해 줄 수 있나요?
집 현관 문을 열면서 아차하고 두고 온게 떠올랐다.
마음을 아주 조금 그곳에 두고 왔구나, 그 웨이터에게 주고 왔구나.
떠나기 하루 전, 화요일 밤.
9시 30분이 넘어가자,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10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까페에 있는 손님들은 몇 명 없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눈은 노트북 스크린을 향해 있지만 초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머릿속으로 나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건네주는거야
그러나 3분 후, 다른 웨이터가 조그마한 하얀 종이를 들고 내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아뿔싸.
가끔, 웨이터가 다가와서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아놔)
약간 떨떠름하게 돈을 건네준 뒤, 다시 말을 거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 그냥 쌩으로 다가가서 말을 거는 수 밖에 없겠구나.
몇 분 후, 매니저가 케이크 한조각이 담긴 접시를 들고 왔다
내일 떠나죠? 케이크는 공짜에요 / 고마워요 (손목 시계를 가리키면서) 그런데 곧 10시인데
걱정마요, 포장해서 줄게요 / 감사합니다
9시 43분.
노트북을 가방에 챙겨 넣어 어깨에 둘러 메고 그 웨이터가 있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눈이 다시 마주쳤다,
이번엔 지난 일요일과는 달리 좀더 편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쪽도 웃어주었다.
그러나 내가 미쳤지, 왜 이렇게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청개구리 같은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얘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는 그 웨이터인데 나는 그 웨이터에게 매니저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미쳤어, 돌았어, 영업 시간 다 끝나가는데 매니저는 왜 불러).
결국, 매니저가 도착하고 나는 기다렸단 듯, 한동안 매니저와 대화를 나눴다. 우선, 명함 여러장을
줬다, 손님중에 노트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명함을 건네달라며. 아니면 카운터 명함 비치대에 놓아도 된다고. 물론 이 와중에 커뮤니티 소개도 있지 않았다.
참 이런거 보면, 나는 항상 언제나 비즈니스 모드를 지니고 다닌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뒤,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이렇게 세련되고 산뜻하고 이국적인 레스토랑 겸 북까페를, 그리고 이런 대형 쇼핑몰 센터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인테리어는 누가 했느냐, 벤치마킹을 한 커피 브랜드가
있는가, 스타벅스? 아니라면 어떤 차별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 사장님이 누구시냐, 음식도 그렇고 커피가 참 맛있다, 직접 원두를 공수해오냐, 매장은 이 곳 한 개인가,중국에
여러개를 운영하고 있다면은 프렌차이즈 형식으로 지점 관리가 되고 있는거냐.. 등등 잠시 그 웨이터를 잊은
채, 한국에 진출할 생각은 없느냐 농담도 건네며 매니저 Tommy와
까페 운영과 사업 확장 얘기를 나눴다. 누가 경영학 전공 아니랄까봐.
매니저와 계속 얘기하는 도중, 카운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때, 그 웨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본론으로.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커피가 맛있어서 거의 매일 찾아왔는데 항상 좋은 맛과 서비스를 제공해줘서 손님 입장에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오늘 안 나온 웨이터들도 있는데 안부 전해달라, 그동안 나 서빙해줘서 고맙다고.
그러면서 슬쩍, 여기 오늘 나온 웨이터들과 인사할 수 있느냐, 다른 한명이 안 보인다-하니까 매니저가 즉시
OO, OO! 하고 외쳤다.
나는 (속으로) 아 OO가 그 사람 이름이구나.
그 웨이터가 ‘네!’하며 스태프 룸에서 허겁지겁 나오자 매니저가 그 웨이터에게 내 소개를 해주었다,
그리고 내 연락처를 건네 주었다. (아싸 연락처 건네줬다, 절반의 성공)
두손으로 내 명함을 들고 계속 보고 있는 웨이터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다시 한번 눈을 마주쳤다, 내 얼굴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더 확실하게 웃었다 그리고 악수를 청했다. 악수는 계획한 게 아니고 그냥 즉흥적으로 갑자기 하고 싶었다. 접시랑 컵 씻느라 손이 찰 법도 한데 손이 참 따뜻했다.
손도 내 손보다 컸다.
그리고 그 웨이터하고만 악수하면 이상하니까 옆에서 에스프레소 커피 기계를 닦고 있던 다른 웨이터 두명하고도 악수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ㅋㅋ 이런게 바로 관심이 있고 없고의 차이니라.
마지막으로 한번더 인사했다. 한국 인사법으로 고개를 숙여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건널 때도, 집으로 돌아올 때도,
악수할 때의 감정, 그 웨이터 손의 체온이 아직 내 오른손에 남아있는 듯, 왠지 오른손 살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 웨이터가 언젠가 꼭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