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생각

유학에 대한 단상 - 유년시절 (1편)

jeanson 2010. 7. 5. 10:17


 

유학에 대한 단상 연재 시리즈 1부
1편: 유년시절
2편: 베트남으로 가다
3편: 유학 가기 전 찾아온 잠깐의 방황
4편: 영국국제학교에서의 1년
5편: '갈래', '갈꺼야', '가고싶어'도 아닌 영국으로 '간다'
6편: 1년 월반, 영국에서의 12학년 적응기
7편: 길고 길었던 2년간의 대학입시
번외편:
유년시절 영어학습기, 유학생이 말하는 영어라는 언어, 유학생에게 연애란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학을 가고 싶어한다. (
나 역시 그러한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나는 특히나 어렸을 때부터 자발적으로 유학을 가고싶어했던 별난 아이였다.  나는 왜 유학을 가고 싶어했던 걸까.


회상을 하자면, 때는 무려 11년 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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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던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각종 어학원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부모님 말을 잘 듣는, 부모님이 시키는대로 잘 따라가주는 아이였다.   내가 탈선을 안하고 어머니가 짜준 (나의 유년) 계획을 나름 잘 따라올 수 있었던건  물론 그때는 자아가 형성되기 전인,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승부욕이 남다른 아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한글도 깨우치기도 전에 영어를 한국말도 못알아듣는 갓난아기한테 가르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혀 수술까지 한다지만, 당시(1995-1997년도)로 치자면 나는 꽤 영어를 일찍 배운 편에 속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가 영어를 배운 방식은 조금 독특했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방식과 경험으로 영어라는 언어를 자연적으로 익혔다고 말할 수 있고 안 좋게 말하면, 영어에 관한 것이라면 그동안(유학가기 전까지) 안해본 것이 없을 정도이다.  


내가 유년 시절 영어를 어떻게 배웠는지에 관한 글은 추후 포스팅하기로 하고, 3-4학년때 다녔던 한 어학원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하려 한다.  이때 겪었던 일로 인해 유학을 가고 싶다는 욕망을 항상 마음속에 품게 된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위에 언급했듯, 그 당시 시절 치곤 영어를 빨리 배운 탓에, 어학원을 다니면 나보다 1~2학년 윗학년 아이들과 같이 반편성이 됐다.   영어는 항상 제일 잘하는 반이나 두번째로 잘하는 반에 속했다.  그런데 어린 것이 뭘 제대로 배웠겠는가, 어학원이라고 해도 어린 애가 4시간 수업을 집중해서 공부하겠는가, 대학생도 내리 연속 3시간 수업하면 꼬끄라지는데.  그때는 그저 쉬는 시간 매점에서 군것질하는 것이 낙이었고 타 학교 친구들 사귀는 것이 학원가는 재미였다.   (이글을 제 부모님이 읽고 계신다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있습니다)


그 학원 이름이 강남에 있던 이화어학원이었는데 당시 내 반에 나랑 동갑인 남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좀 까부는 성격에, 나보다 영어를 못해서 내가 깡 무시하고 있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동안 어학원에 안보이더니 여름방학을 외국에서 보내고 놀라울 정도로 향상된 영어실력과 함께 다시 내  반으로 합류한 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매일 학원 교재, 독해문제 풀고, 과외하고, 학원다니고 전화영어로 고작 하루 매일 10-15분 미국인과 대화하려 애쓰는 동안 그 아이는 외국(미국이었나, 기억안남)에서 실컷 놀다온 것만으로도 나와 영어 언어실력이 비슷해졌기 때문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11살이었던  나는 분노했다.  


어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엄마 앞에서 엉엉 울었다. 

나도 유학 보내달라며 눈물, 콧물을 쏙 빼도록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이렇게 힘들게 영어 배우기 싫다며 나도 외국에서 영어 배우고 싶다고, 엄마가 어떻게 나를 달랬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유학을 갈 수 없다는 현실에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기에) 초등학생이었던 나 자신이 어떻게 체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눈물을 그치고 내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책상에 앉으면서 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댔던 기억은 난다.  그때 난 속으로 강하게 마음 먹었다. 

언젠간 나는 유학을 갈 것이라고.  반드시 가고 말 것이라고.


그 일 이후로 유학은 내 마음 한켠 자리잡기 시작했다. 

유학은 나의 첫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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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그로부터 6~7년 후,

나는 여느 다를 바 없는 갓 입학한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수련회를 다녀온 뒤,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기술가정 교과서를 손에 쥐고 미리 형광펜으로 밑줄 친 핵심 부분만 읽어내려가던 중, 아버지가 과외방(내 공부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오셨다.  


응 아빠 왜

“….”

“…?”

갈래?  너 유학 갈래?”


그 당시의 심정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구원의 손길을 내어준 천사였다.  그것은 뜻밖이었고 행운이었고 찬스였고 둘도 없는 기회였다.  


갈래?”라는 말에 나는 달달 외우며 들고 있었던 기술가정 교과서를 그야말로 단번에 땅바닥에 내리쳤다더이상 그 암기물(?)을 볼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 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환호성을 외쳤다.  물론 나에게 이의가 있을리 없었다향후 걱정도 안하고 그자리에서 단박에 응했다. 

당시에 나에게로 다가올 일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유학은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때부터 강렬히 가고 싶어 했었고 선택이 필요 없었던 시대였다. 

이미 마음만은 벌써 유학 준비와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친 상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