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지 6개월.
이렇게 오랜기간 동안 한국에 머무른 적이 없었다.
8년 만에 한국에서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맞았다.
몇년 사이 크게 변해버린 상점과 동네의 풍경
그 사이에,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변해버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변하는 것이 전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
어릴 적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그 모습 그대로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어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
11월
여전히 시야는 그 사람을 찾고 있다,
정차한다는 요란한 신호음을 내며 지하철 칸들이 굳게 닫힌 두꺼운 문 너머로 흘러가는 순간에도.
이번 칸도 꽝이구나 저 다음칸도 꽝이구나.
어느새 지하철 탑승은 매번 이름도 모르는 사람 찾기 게임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이젠 습관이 돼버렸으니까.
나는 그날 그 사람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이며
만나면 분명 다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다.
11월
오랜만에 느끼는 눈마주침이었다. 상대방이 나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고
나도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의 눈을 정확히 응시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 있다.
가벼운 호감이겠지.
그러니 이런 부담되지 않는 눈마주침은 그날의 기분을 조금 좋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사람이 생각났지만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역시 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며.
12월 2일
내가 본 서울의 첫 눈.
12월 3일.
발가락이 시릴 정도로 날씨가 추워지고 나서부터는 한강대교를 건너 야경을 감상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날씨 탓일까. 아님 감기 때문일까. 아무도 없는 한적한 거리에서 뽀득뽀득 거리는, 오직 나만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때
첫 발자국을 남기는 가벼운 즐거움보다는
때로는 묵직하고 낮은 한숨을 슬며시 내쉬게 되는 담담함만이 존재한다.
한강을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고, 하늘 높이 날아
뭉실뭉실 핀 구름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질까.
별들이 꼭꼭 숨어버린 밤하늘 아래 소음 없는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칠 때면,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질까.
나는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12월 5일
어느 정도 프로젝트가 거의 고지가 보이는 지점에 왔기에 요근래 나는 업무량을 조금 줄였다.
그러자 매일 약을 달고 살아야 했던 나의 두통이 조금 줄어들었다.
12월 6일
11월 1일이구나 하는 순간 12월을 바라보는 11월 말이 되었고
아침에 장갑을 깜빡해 작은 한숨과 함께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을 열 때 12월은 첫째주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은 두둑한 점퍼와 코트를 입고 있었고
내가 내쉰 호흡은 공기속 연기로 변해져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막연함이 존재했던 어느 여름날처럼,
이 계절에 대한 막연함도 그때와 비슷한 크기인데,
이 계절이 한창일 때, 혹은 이 계절을 넘어설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까, 잠시 생각했다.
1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