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원외고 SAP(해외유학반) 졸업반 61명 전원 아이비리그 포함 미국 명문대 합격, 진학 → 6년 후, 2010년 연락이 닿은 50명 중 20명은 한국으로 귀국 → 그 20명 중 11명은 국내 기업에 취업(인턴 포함), 7명은 대학원(의전, 미국대학원 준비) 진학, 2명은 군대.
50명 중 6명은 군 복무 등으로 아직 학부생.
한편, 대학 졸업 후, 현지에 남은 사람은 24명. 미국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은 13명. 대학원 준비를 준비하는 사람 4명까지 포함하면 과반수를 훌쩍 넘는다.
졸업 후 현지(미국)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5명에 불과. 홍콩, 일본지사에 취업한 사람은2명.
사실 이 뉴스기사를 보고 대다수의 유학생들은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한국 유학생이 졸업 후 미국 기업에 취직하기가 거의 힘들어 한국 대기업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그 학생이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외국인으로서 별도의 취업 비자에 대해 지원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외국인인 유학생이 시민권/영주권 없이 일명 맨(?)신분으로 영국,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취업을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니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신문기사에 실려도 전혀 놀랍지 않을 일이다. 그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금융위기에 채용시장이 전세계적으로 위축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에서도 되도록이면 자국민을 채용하라고 기업들에게 압력 메세지를 행사하는 지경이다. 경기가 안좋다보니 암묵적인 채용 조건이, 1순위는 내국인 2순위는 (영국의 경우엔)EU인 및 시민권/영주권자 3순위 꼴찌는 외국인 학생이다. 물론 그것도 현지에서 대학을 나온 학생이 타국 대학출신보다 더 우위에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채용하는 것이 회사에겐 현지인이나 유럽인을 채용하는 것보다 절차도 좀더 복잡하고 훨씬 더 많은 비용(취업 비자 내주기, 보증해주기 등)이 더 많이 든다. 참고로 그 비용은 아주 상당한 금액이다, 액수가 단순히 몇 십 만원이 아니다. 그러니 외국인을 채용할 땐 이러한 막대한 cost를 감수하겠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채용을 하겠다는 건 그 외국인이 회사에게 반드시 꼭 필요한 인재이기 때문에 채용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외국인을 채용하지 않는다. 기업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시민권 없는 외국인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회사 입장에선 위에 언급한 취업 비자 문제 등으로 번거롭고 소모적인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같은 스펙이라면 언어가 모국어인 게다가 현지인이나 시민권자를 뽑지 왜 굳이 외국인을 뽑으려 하겠는가. 그만큼 외국인의 현지 취업은 정말 드물고 드물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적어도 유학생은 채용 합격이 되건 안 되건 그 여부를 떠나, 한국과 현재 본인이 공부하고 있는 나라 두 곳 이상에 원서를 낼 수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것이 유학의 최고의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대학생들보다 몇 배의 비싼 학비를 치른 만큼 적어도 유학하고 있는 나라의 회사들에게 원서라도 들이밀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그러나 유학을 갔다고 유학생 모두가 현지 취업에 성공을 하는 건 아니다.
지원한 회사 지원서의 마지막 결과 여부는 유학생 본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따라 갈린다. 그리고 씁쓸한 현실이나, 좀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북미&유럽 회사, 신입 채용의 경우), 학벌과 현지 회사와의 인터뷰 횟수가 정비례한다. 그리고 학업 하는 나이가 어리고,어렸을 때부터 조기 유학한 유학생일수록, 그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어느 시기에 유학을 갔는지에 따라 상대적으로 영어 언어 능력이 차이를 많이 보이게 되는데 대학을 해외대학을 나왔을지라도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나온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언어에 한계를 느낄 수 있고 또 다 커서 유학을 왔기 때문에 대학교를 외국에서 나왔을지라도, 자아가 한국에서 형성돼서 유학을 간 것이기 때문에 현지 사고방식이나 문화가 100% 몸에 벨 수는 없다. 익히 다 아는 사실이지만, 오히려 나이가 어렸을 때 유학을 온 사람일수록 영어 언어 구사력이나 현지인 문화, 가치관 등이 몸에 베이게 된다.
어쨌건, 따라서 요지는, 유학의 궁극적 목표이자 강점은 영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중(다중) 취업시장 진입이 가능한 '자격'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현지 취업이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해도 그 좁쌀보다 작은 구멍을 통과한 사람은 분명 있다.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아시아인(중국인 등)도 적지 않다. 미국 아이비리그, 또는 아이비리그가 아니더라도 시민권 없이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뉴욕의 글로벌 회사, Morgan Stanley, Goldman Sachs, Citi Bank 등에 취직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지 해외취업은 절대 불가하다”는 말을 반증한다. 내가 왜 내국인보다 더 뛰어난지,내가 내국인들보다 더 특출난 부분이 무엇인지, 내국인은 절대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나는 회사에게 줄 수 있다고 자신 할 수 있는지를 회사에게 증명하고 확신 시켜주면 너도나도 서로 입사하라고 러브콜을 보낸다. 위와 같은 차별화를 갖추고 현지인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없더라도 비즈니스 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라면 (물론, 이것은 일상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정도의 영어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시안으로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 회사가 기대하는 모습이란, 아시안 특유의 차분하고, 섬세하고, 단정하고, 성실한 모습 정도..? 이것은 외국애들에겐 보기 드문 점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볼 때 최대한 그러한 이미지를 끌어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회사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다르고, 또 면접관마다 틀리기 때문에, 이것이 정답인 것은 절대 아니다.
나의 경우, 애초부터 그것을 노리고 유학을 가기로 결심을 했었다. 처음부터 확고했다.
설령,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올 지라도, 일단 처음은 해외에서 움직이고 싶었다. 왜냐,
비싼 학비를 외국에다 몇년 이상씩 투척해버리고 한국에 돌아올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나는 엄연한 외화유출범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한국에 돌아온다면 부모님에게도 죄송스러울 것 같다. 어머니는 영국에 떠나기 전,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워낙, 돈, 경제 관념이 확고하신 분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님이 내 유학비를 내주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금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용과 채무관계이다. 빚을 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무슨 마음가짐으로 금융을 공부하려 한다는 것이고 어찌 금융인이 될 수 있겠단 것인가.
그리고 이젠 외국대학 (특히 학부) 나왔다고 보장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절대로 간판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한국 인맥이 턱없이 부족해서 신입으로 취직할 경우엔 오히려 마이너스라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현지에서 하는 여름 인턴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일이든 되야 한다고. 무조건 되야 한다고. 안 되는 것이라도 되게해야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나는 기회를 내 스스로 생산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기회가 또 다른 기회를 파생하고 파생된 기회가 여러 기회를 끌고 왔다.
대표적인 그 기회란, 이를테면, 선망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 어느 날 갑자기 날라온 초대 이메일, 토론 모임에서 만난, 나보다 더 나은, 내게 자극을 주는, 학교 선배들을 만나는 것, 그들을 통해 고급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러한 기회들은 결코 우연으로 불현듯 찾아온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뺑뺑이로 돌려서 소수의 학생에게 토론 세션에 참가하라는 이메일을 보냈겠는가, 아님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나열해서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토론 참가 이메일을 보냈겠는가, 절대 아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신입생이었던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입학처장 사무실이었다. 친구들이 대학생이 된 즐거움에 펍에서 술을 마시고 파티에서 춤을 출 때, 나는 밤낮으로 학교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연락을 지속했다. 1학년때 나는 정말 설쳤다. 경영대학내 학과 프로그램 담장자 두명과 미팅을 자처하며 커리큘럼 개선안에 관하여, 그리고 경영대학의 발전에 관한 아이디어 제안 등을 주제로 토론까지 했을 정도니까. 하도 나대서 경영대학내 웬만한 스태프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니어 입학처장서부터 그 입학처장 비서, 학과 프로그램 담당자 그리고 그의 보조 담장자, 과사 직원들까지, 심지어 청소부 아줌마도 나를 아는 척했다.
이후, 각종 행사,이벤트, 토론 세션, 프로젝트가 있으면 학교에서 나를 불렀다. 심지어 학과 전공 프로그램 디렉터, 경영대 홍보 마케팅 총괄 책임자, 경영대학장, 대학교 총장과의 미팅도 가졌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또 그러한 장소, 모임의 장에서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또 다른 기회를 발견하고, 노력하고 기회를 만든 것이다. 제때, 제 장소에 있었으며 물론 약간의 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의 것이다. 기회가 자기 앞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러한 기회들을 먼저 찾아 나서고, 그 기회가 언제 찾아오던 ‘옳거니 왔구나’ 하고 알아보고 바로 캐치할 수 있는 사람, 충분히 기다릴 줄도 알고,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 사람, 준비된 사람만이 그것을 자신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되려면 좌절부터 맛봐야 한다고,실수와 실패를 겪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내가 만든 여러 기회들이 그냥 거져 먹기로 나에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시행착오도 있었고, 찾아와줘도 내가 의식하지 못해 놓쳐버린 기회도 많고, 나 자신을 비관도 하고 한없이 자신감이 땅바닥을 쳤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침대에 누워 오랫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기도 했었다. 의욕을 잃기도 했고,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지고, 항상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한없이 미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헤아릴 수 없는 잠 못 이뤘던 밤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며,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어온 길을 계속 걸어 나아갔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스타일이었고 그것이 엔진이었다. 악착같이 끈질긴 스타일이거나 악바리는 아니지만 소처럼 그냥 하루하루 매일매일 꾸준히 그리고 24시간 내내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것이 아마 결국엔 통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인턴 지원 소속 부서 변경 제의(Back 에서 Front로) 라는 기회를 얻기까지 물론 약간의 독특한 전략과 나만의 특수한 방법은 있었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일종의 보조 요소들인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나 혼자 일궈낸 일이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 물론 그들이 밥 숟가락을 떠먹여주진 않았지만 나는 이러이러한 밥상을 차렸던 적이 있었노라, 이렇게 또는 저렇게 밥을 먹었었다-라는 식의 경험담은 나에게 살이 되고 뼈가 되어 주었다. 나보다 훌륭한 점이 있는 사람, 나보다 더 나은 점이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respect 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배 아파하고 아니꼬워 하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또 그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얼른 캐치해서 나만의 형식, 나만의 스타일로 변형시켜 흡수했다. 이러한 태도 또한 기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 자서전이나 수기 글들을 보면, 그들에겐 무언가 일련된 공통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며, 그것에 대한 진한 열정이 있고, 열정이 생기면 몸이 바삐 움직이게 돼고 자연히 해야할 일들이 많아지고, 기회가 생기고, 그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운도 절로 따라주는것이다. 또한 그들은 절대 남을 따라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과 스타일을 만들어 나간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들의 반열에 오르려면 아니 그런 성공한 사람들 흉내라도 내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어디서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성공한 인생을 살았는지 아닌지는 적어도 십년 후에 알게 될 일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이제 나는 또 다른 새로운 기회를 앞으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나는 지금 여전히 진행중이다.
2010년 8월 여름에 작성, 상하이로 가기 전.
By Jean Son, Manchester
Business School (Class of 2012)
Team Member at NETWORKINGBANK
위 글은 2010년 8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그 후, 1년 동안, 중국 상해, 그리고 홍콩에서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회사, FX 트레이딩 펌, 헤지펀드 회사에서 RA, 서머 애널리스트 인턴으로 근무했었고 현재, 2012년 여름 졸업을 앞두고, 벤처 기업, 넷뱅에서 Co-Founder 이자 Web Architect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