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서너시 쯤이였던가.
'띠링' 알림음이 울렸다.
오랜 친구의 문자 메시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고등학교때 친구였던 일본인 친구가 자기가 있는 곳으로 놀러온다며
나보고 시간이 괜찮다면 주말에 하루 묵고 가라고, 너무 보고 싶다고.
사실 이 친구가 이런 문자를 보낸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주는 아니고 일년에 두세번 보냈지만 그때마다 꼭 만나겠다고 약속했지만 매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번에도 역시 거절하려 했으나 왠지 이번엔 정말로 만나고 싶은 느낌이 아니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알겠다고 하니
그친구가 이모티콘 수십개를 날리며 좋아했다.
기차 티켓을 구매하니 그제서야 내가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4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고등학교때 같은 기숙사층이었던 일본인 친구와는 5년 만에.
세워놓은 계획도 없이 무작정 기차 티켓을 끊고 잠옷과 세면도구, 노트북만 간단히 챙기고 역으로 떠났다.
From Manchester Piccadilly Station to Birmingham New Street Station.
딱 런던까지 걸리는 시간의 3분의 2였다. 1시간 반.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친구가 마중 나온 역에 도착했다.
역은 수십개가 넘는 플랏폼의 기차에서 뱉어져 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많이 붐볐다.
그 사람들 가운데서 도저히 친구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전화통화도 거의 2년 만에 하는 것 같았다.
“도착했어. Way Out 쪽으로 향해 가고 있어. 에스칼레이터 보이는데 타고 올라가야 하니?” /
그때 슥 스치는 한 사람.
뒷 모습만 봐도 누군지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익숙한 이 등짝. (이친구는 귀여운 상체 비만이다, 다리는 엄청 가는)
“180도 뒤로 돌아봐” /
“뭐라고?”
“뒤돌아보라고-”
시야에 보인 것은 그리운 친구의 얼굴.
우린 주저할 것도 없이 포옹을 했다.
‘오랜만이야’, ‘보고싶었어’ ‘너무 반가워’ 란 말 대신.
오랜만에 영국에 온 탓인지 다른 기차를 타버렸다는 일본인 친구까지 곧이어 도착하고
격한 재회를 나눈 탓인지 배가 무지 고파왔다.
친구네 아파트에서 짐을 풀고
곧바로 뷔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아 난 3 그릇도 거뜬히 해치울 것 같아"
길을 걸으면서, 우린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던 시절에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하나씩 읊으면서 그땐 그랬었지하고 깔깔 웃어댔다. 그땐 그렇게 감옥 같은 이 기숙사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나만의 사명감으로 무장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이렇게 그때 그 시절의 추억담으로 즐거운 잡담 거리가 되었다는 것에 새삼 세월을 느꼈다.
작은 마을의 학교 캠퍼스 주변은 온통 숲으로 둘러 쌓여 있고, 토끼와 사슴, 다람쥐와 함께 수없이 등하교를 했던 것, 밤마다 언덕 위로 올라가 별들을 바라봤던 것. 그땐, 그렇게 지겨웠던 일상이었는데 각자의 사정으로, 석사 시험과 CFA 시험 준비로, 졸업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바삐 지내는 지금의 우리 생활에선 절대 기대할 수도 꿈꿔 볼 수 없는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턴가 관광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내 친구는
가는 길마다 여긴 어디고 저쪽은 뭐고, 저기 한번 가볼래? 전망을 한번 봐봐- 하며 계속 설명을 했다.
배가 고프면 말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나는, 그때마다
"그래그래 알았어, 그래서 레스토랑이 도대체 어디에 있지?"
맛집이어선지 레스토랑에 도착해서도 거의 30분 넘게 기다렸다.
두번째 접시를 마칠 무렵, 서서히 주변의 시야가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나는 온전히 먹는 것에 최선과 집중을 다 했다.
그리고 우린, 그동안 궁금했던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또 소식이 뜸한 고등학교의 친구들의 소식을 대홧거리로 삼아 잡담을 하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그렇게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이 흘렀다.
디저트로 먹은 내가 직접 만든 크레페는 참 맛있었다.
그것은 마치, 4년 만에 만난 세 친구들의 수다스럽고 발랄한 분위기 같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