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어렸을 때부터 존경하는 분이고, 이분의 기업가 정신과 대의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이분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옳다고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 말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어떻게 살 것이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메가스터디의 성공요인
중국 및 베트남 시장 진출 위해 준비
모든 사람은 성공을 원한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한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바른 길을 선택해 결국 종착지에 다다른다.
아이러니 하게도 직업적으로나 사업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 조차도 본인의 업적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경우 본인들이 원하는 종착지에 도달하더라도 공허감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공허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국내 최대 온라인 교육 서비스 업체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는 직업적 성공과 행복감의 괴리는 성공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잘못된 성공 방정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손주은 대표 인터뷰 전문
Q: 어떻게 기업을 이만큼 키웠는지요?
A: 하던 일에서 확장된 것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온라인으로 바꾼 형태의 기업입니다. 이만큼 성장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적용되었습니다. 개인 혼자서 해 낸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인재들이 많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Q: (인생에서)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A: 왜 사업을 했느냐 하는 출발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많이 강의합니다. 부등호를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성공, ·일, ·어떻게 놓고 살 것이냐를 놓고 봤을 때 보통 학생들은 성공을 일 번 일을 이 번, 어떻게 살 것이냐를 마지막으로 보통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름대로 물질적인 성공의 기준을 잡아놓고,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어떻게 자기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일도 잘 안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일 번이고 가장 자기답게 살수 있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다음이고, 마지막이 성공이 되어야 합니다. 부등호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업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고민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스타 강사에서 기업 CEO가 된 계기는?
A: 87년 7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은 안 잡혀있었습니다. 사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명분을 만들었는데 2년만 돈을 벌어서 독일 가서 공부를 하자는 명분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2억을 벌었습니다. 돈을 벌어보니까 현실과 달랐습니다. 목표를 수정해서 고시공부를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고시공부를 3월 2일부터 시작했는데 일주일 해보니까 못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시 1차 원서는 넣었습니다. 2개월 정도는 서울대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았습니다. 결혼도 했으니까 시험은 쳤습니다.
시험이 끝나니 학부형들이 다시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90년 11월에 학원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개인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둘째 집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나이가 32이었습니다. 첫째가 먼저 가고 둘째까지 죽고 나니까 망해도 망할 때까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둘째를 묻고 나서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수업은 제가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래서 그때부터 수업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일주일에 60시간씩 가르쳤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가르쳤습니다. 애들이 다시 태어나고 안정이 되고 생각해보니까 96년이 되고 나이가 36살이 되었습니다. 그도 한 9년 동안 했는데 해 놓은 것은 없고, 돈은 벌어두었는데, 그때부터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고민을 한 것이죠.
처음에는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학교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사립학교를 세워서 내가 재단 이사장이 되고, 또 내가 애들 잘 장악하니까 좋은 학교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교육에서 더럽게 번 돈을 가지고 공교육에서 깨끗하게 쓴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이 있더라고요. 사실은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것보다는 36살까지 얻지 못했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그 돈으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사장을 해서 얻겠다는 아주 얄팍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많이 타락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아주 타락하기 쉬운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은 성공이든 큰 성공이든 약간의 성공만 오면 바로 옆에 실패와 타락이 붙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타락입니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특히 대부분 그렇습니다. 돈을 번 사람들이 사회에 봉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명예를 봉사와 맞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직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더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강의였습니다 강의를 해야 하는데 왜 강의를 그만 두려고 했냐면 사교육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 윤리적으로는 선이지만, 사회윤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있는 애들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는 내려가야 합니다. 계층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수인 역할 밖에 안 하는 것이니까 내가 사회적 악이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계층적 불평등을 완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대중강의를 하자, 기업의 형태로 가지고 가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이천 구상이라는 것을 96 년도의 12 31부터 아침부터 해서 97년 11월 1 일 날 아침까지 연말 연시 34시간 집중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깨끗한 기업인이 되자. 그렇게 해서 대전환을 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Q: 시행착오는 없었나?
A: 막상 개강을 하고 나니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학생이 하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누군지 모르는데 누가 오겠습니까? 시장 논리를 몰랐던 것이죠. 전 달에 5000 만원 정도 벌었는데, 32만원으로 추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달부터 학생들이 점점 늘었습니다. 다음 달에 20개 반이 다 마감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 수가 2000명이 되었습니다. 학원가에 유례가 없는 사례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교실을 확장해서 한 달에 5000명씩 가르쳤습니다.
Q: 대중강의 및 온라인 강의는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A: 사교육을 사교육 안에서 해결하는 모델을 찾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교육으로 인한 불평등을 줄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대중강의를 10년 넘게 했습니다. 계층간의 불평등 문제에서는 대책을 마련했다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대중강의를 한 것입니다. 강의 가격이 훨씬 쌉니다. 그런데 수도권 지역에서는, 즉, 접근 가능한 지역에서는 학생들이 다 수강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또 지역적 불평등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온라인을 착안 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97년 1월 1일에 그런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러던 차에 98년에 케이블 TV 홈쇼핑을 보면서 저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지식기반 사회가 어떤 특징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시공간의 경계를 극복하고, e-learning 이나 홈쇼핑, 전자상거래 같은 것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실제로는 못 느꼈는데, 케이블 TV를 보는 순간 소비자가 백화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백화점이 집으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학생이 학교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학교가 학생에게로 오는 이런 시대가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터넷을 통해서 강의로 구현할 수 있는 고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론적인 고민을 98년에 많이 했고 99년에 당시 유니텔 이라는 PC통신을 통해서 음성만 전송하는 강의방식을 이용해 봤습니다. 가볍게 화면에 필기만 하는 GVA 방식의 강의를 했는데 그 때도 반응이 꽤 왔습니다. 그 강의를 아이들이 열심히 들어줬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가능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2000년 4월 달에 최종결론을 내리고 7월 10일에 법인 설립을 해서 온라인 회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결국 가장 큰 바탕에는 나 자신에게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연장에서 사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A: 교육 정책 자체가 너무 이론가들 중심으로, 교수들 중심으로, 특히 미국으로 공부한 사람들 중심으로 우리 현실에 안 맞게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직 교사나 학부모, 교육 수요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교육정책을 실현해야 한국 교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전히 미국의 것을 이식해서 교육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입시제도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초·중·고 에서 교육하는 과정과 전혀 동떨어진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있거든요. 미국에서 이야기하면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줄 착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입학사정관제도라는 제도는 한국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글로벌 인재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글로벌 인재는 똑똑한 인재가 글로벌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잘하면 똑똑해 집니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는 똑똑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사교육을 양산을 시켜 놓은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정부가 대입제도만 간단하게 손대면 우리나라 사교육 규모를 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Q: 근성은 어디서 나오는지?
A: 초등학생은 학원 다니면 안됩니다. 튼튼하게 커야 합니다. 잘 놀아야 하는데, 잘 놀아야 성공합니다. 제가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출발점은 어릴 때 잘 놀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내기를 항상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설명할 때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내기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승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몰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장난 삼아 하는 구슬 놀이는 1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면 못합니다. 하지만 승부가 걸렸다 하면 대 여섯 시간 계속 할 수 있다. 축구도 내기가 붙으면 서너 시간 뛰어야 합니다. 스포츠 류를 좋아하는데 탁구도 6시간씩 치고 축구도 한 14시간 정도 합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체력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 몰입 열정의 에너지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애들이 이학원가고 저 학원가고 하면 애들을 망치게 됩니다. 짜인 틀 속에서 자기 인생 외에는 또는 주어지는 것에 대응하는 능력만 있는 것이지 창조적이고 승부를 걸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못합니다.
Q: 사업 성공하는 요인이 있나?
A: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의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지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하면 잘 안 되곤 합니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DNA가 있습니다. 아니면 어릴 때 만들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소위 중산층이나 전문가 집단에서 자녀를 잘 교육시킨다는 것이, 자기 수준으로 만들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창조적인 인물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Q: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기질은 어떻게 키웠나?
A: 어릴 때 승부를 즐겼던 것뿐만 아니라 어릴 때 경험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집이 장사를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슈퍼마켓을 하셨고, 아버지는 군납업을 하셨습니다. 시골이지만 둘 다 사업을 열심히 했던 분들입니다. 작은 사업을 하셨지만. 철학이 있는 사업을 하셨습니다. 조그만 사업을 했지만 말입니다.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는 아버지가 농사 짓고 축산을 좀 하고 했는데 돈을 좀 벌었지만 어머니는 이것은 아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손도 많이 들어가고, 힘들고, 부가가치는 적고 하니까요.
어머니가 18살에 시집을 왔는데 26세 때 면소재지 가서 장사를 해야겠다 라고 결단을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선택한 집이 면소재지 안에서 가장 중심 적인 곳에 있었습니다. 제일 좋은 장소인데 원래 농사지으면서 면사무소 직원들 와이셔츠나 좀 다려주는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사서 하자고 하셨습니다. 하도 안 판다고 해서 시가의 5배를 주고 샀습니다. 어머니가 배팅을 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60년대 후반, 경제 성장할 시기에 인구가 삼 만 명 정도 되는 큰 면에서 좋은 질의 물품을 싸게 팔며 질을 정직하게 장사했습니다. 저희 집안이 청교도 집안인데 일요일에는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파는데 원칙까지 지키니까 신뢰가 많이 형성되었습니다. 명절 전에는 물건을 줄을 서서 사갔습니다. 종업원이 네다섯 명이었는데 저도 어릴 때 같이 하루 종일 장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럴 때는 하루 매출이 1000만원 이상은 나왔을 것 같습니다. 슈퍼마켓인데도 상당히 큰 슈퍼마켓이었습니다. 여기 안에서 온갖 것을 다 했습니다.
또 무조건 소비자가 옳다고 생각하라는 것이 몸에 베여 있었어요. 소비자가 불합리한 행동을 해도 말입니다. 또 어머니께서 70년대에 마산의 중심지 어시장에서 가죽잠바 맞춤집을 하셨습니다. 그때 어릴 때 저도 많이 따라가봤습니다. 장사가 정말 잘 되었습니다. 맞춤집을 마산에 내고 순천에 내고 진주에 내고 그 다음해부터 늘려나갔습니다. 가죽잠바가 그 당시 제일 비싼 옷이었는데, 하루에 20~30개씩 팔렸습니다. 왜 그렇게 잘 팔렸을 까 생각해 보니까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1970년에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섰는데, 노동자들이 도시로 들어가 겨울을 이겨야 되는데, 그때 는 아직 기성복이 없잖아요. 그 때 가장 따뜻하고 가벼운 것이 가죽 잠바니까 그것을 맞추어 팔면 사가는 것입니다. . 그런데 만 5년째에 접었다. 왜 그만하냐고 여쭈었더니, 그만 할 때도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해에 SS 패션이 나오고. 우리나라 맞춤집은 다 망했습니다. 먼저 사업을 접으셨는데 어머니께서는 그만큼 판단력이 뛰어나셨습니다.
Q: 달변은 어디서 오는가요?
A: 말하는 능력은 전달하는 능력은 유전자 속에 들어 있습니다. 또 가르치는 것이 제일 맞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가서 강연을 가끔 하는데 전교생 대상 강연은 힘들기 때문에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육과정에 필요해서 가서 할 때가 있는데, 제가 가서 강의를 하면 거의 한 두 명도 안 자게 할 수 있습니다. 교장들이 놀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당기는 힘도 있다고 보고 학생들을 장악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을 설명할 때 상대에게 충분히 전달될 때까지 하는 편입니다.
Q: 인재를 사용하는 원칙은?
A: 계열사가 8개인데, 계열사 사장을 결정하거나 사업부 장을 결정할 때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정합니다. 첫 번째는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 확률이 적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실패를 하지 않을 사람을 결정합니다. 결국 비즈니스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직관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해외 사업은 준비하고 있는가?
A: 중국 시장과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는 Tapping 단계에 있습니다. 비즈니스 환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접근합니다. 해외 사업은 역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나라의 사람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호품 같으면 사람들의 기호가 생기고 확 퍼질 수 있는데, 이것은 문화이고 콘텐츠입니다. 우리는 교포로 상대로 하는 것은 해외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Q: 중장기 목표는?
A: 나름대로 중장기 목표는 있지만 여기서 공개할 정도는 안되고, 전체적 계획은 있지만, 결과가 나올 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업을 온라인 기업으로 알고 있지만 실재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그렇게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 전체의 매출은 50 대 50 입니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가 앞으로 큰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쪽 같은 경우에는 자본주의 2.0으로 가면서 공유, 참여의 자본주의 문화가 생기고 카피레프트적인 입장이 강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온라인 교육이 패러다임 시프트 기간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고 그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메가스터디의 미래에 있어서 다양한 사업능력에 대한 고민이라던지, 향후 10년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비즈니스 모델의 관점에서 보고 있기도 합니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의 존재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에 맞춰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는 비즈니스가 뭘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고민 단계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경쟁과 소비 위주의 단계에서 참여와 공유라는 새로운 관점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어떤 정확한 이해와 탐색을 통해 비즈니스의 새로운 주도권을 찾고자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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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황판단력은 어떻게 길러진 것인가
A: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상당히 상황 판단을 빨리 한다. 상황 판단력이 있는 것은 어릴 때 내기를 많이 해서 라고도 봅니다. 흐름파악을 빨리 합니다. 어릴 때부터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집중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집중력 있게 들으면서 모르는 것은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즉각적인 대응을 합니다.
Q: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방황하고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헤매고 늪에도 빠져보고 수렁에도 빠져 보고 뭐하나 붙잡고 나오고 간신히 나와서 탄탄대로를 당당하게 갈 수 있는데 이런 함정과 위협요소들을 사교육 때문에 싹 다 피해간 면이 있습니다. 사교육에서 정확하게 지름길을 제시해 주니까요. 또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은 신 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나타나는 시대에 서있기도 있고요.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풍요의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풍요로워서는 안됩니다나는 미국이 그래서 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와 향유만 지속되어서 에너지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에 천재적인 마크 주커버그가 있고 스티브 잡스가 있어도 소수의 천재가 모두를 살릴 수는 없습니다. 고민을 통해 에너지를 길러야 합니다.
비즈니스 포커스 권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