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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좁은 아이들: 유학 갈 결심은 왜 했지?

교육

by Jzzn 2012. 6. 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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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좁은 아이들

박영준 지음 / 김영사 펴냄 / 2006.02.15




|서문|
아이들에게 숨어 있는 1인치의 위대한 가능성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머리말을 쓰기 직전, 미국에서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메일을 보낸 주인공은 책의 본문에도 나오는 제자 준이. 미국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 한때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제자였다. 나는 당시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온 그 아이에게 "준이가 갈 곳은 대학이 아니라 군대"라며 정신 재무장을 '강권'한 바 있다.
준이는 다행히도 내 권유를 받아들여 무사히 현역 복무를 마쳤고, 미국에 돌아가 남은 학교 생활을 충실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 공부와 취직 준비에 바빠서 자주 연락을 못하던 준이가 오랜만에 보내온 소식은 기쁘게도 뉴욕에서 취업을 했다는 것이었다. 준이는 "배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힘이 돼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왔다.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지난 20여 년간 학원 상담실에 앉아 아이들의 진로 및 유학 문제와 씨름하면서 때로는 힘들다는 생각도 했다.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고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비전을 제시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님과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제자들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길을 가서 작은 결실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을 때, 모든 어려움과 답답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교육이란 작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쟤는 도대체 뭐가 될까?'라고 의문을 가지는 아이들도 애정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가능성과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숨어 있는 '1인치', 부족한 '2퍼센트'를 찾아내는 것은 누구 역할일까. 두 말할 나위 없이 부모와 스승의 역할이다.
자원은 물론 자본도 없지만 인구는 많은 대한민국. 전 세계 시장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 받고 자본을 축적하려면 오로지 뛰어난 머리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자라나는 우리 인재들을 교육 단계부터 국제 경쟁시장에 내보내 훈련시키는 것이다. 물론 국내 명문대에서 교육시켜 해외 유수 대학원에 보내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개발연대 시절에 사용했던 '구식'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경쟁자인 중국, 인도는 몇 년 전부터 중학교 때부터 자신의 아이들을 미국, 영국 등 서구 선진국에 보내 우수한 교육을 받게 해왔다. 이러한 결과가 축적돼 중국을 비롯한 화교권 국가들의 엄청난 경제 성장과 인도의 IT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 사회 각계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쟁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양성되지 않고, 미래에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간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최근 우리 아이들의 경쟁력이 사상 최고에 이르렀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아이들은 12억의 중국, 9억의 인도 아이들을 제치고 아이비리그 대학교와 그 밖의 명문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뿐만 아니라 세 아이의 아버지 된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자녀 교육은 작은 가능성만 있어도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그들이 세계로 나가서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며 신념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스승과 부모는 아이들에게 '히딩크'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확신하며 평생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것을 다짐해본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원고 정리에 큰 도움을 준 임선근 작가께 감사 드린다. 또 미 뉴저지 서울어학원 박수현 원장, 김남성 씨, 대원외고 김일형 교감 선생님, 한국외대 부속외고 박하식 교감 선생님,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입학처장,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와 세인트 폴의 입학처장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물론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협조해준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나의 가족들에게 그동안의 노고와 사랑의 답례로 이 책을 바치고 싶다.


서울어학원 대표원장
박영준





1. 대한민국 국민을 넘어 세계 시민으로


포항 엘리트에서 세계 엘리트로!

오후 내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상담이 잠시 끊겼다. 어느 어머니가 길이 막혀 애를 태우고 계신가. 상담 예약을 한 어머니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그 잠깐의 순간이 내겐 한숨 돌릴 수 있는 휴식시간이 된다. 책상 밑으로 다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한 어머니가 큼지막한 짐 가방을 들고 학생과 함께 내 방에 들어섰다.
"예약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포항에서 왔거든요. 밖에 앉아 있었더니 프런트 데스크에서 잠시 원장님 시간이 빈다고 들여보내줘서……."
첫 상담에서 "아이비리그 가기 위해서 여기 왔어요"라고 밝힐 만큼 저돌적인 아이는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 당돌함이 괜찮았다. 그러나 아이비리그는 나중 일이고 코앞의 관문은 보딩스쿨(사립 기숙학교)이었다. 시간은 촉박했고 준비는 전혀 안 되어 있는데, 목표는 아주 높았다. 어머니를 따라서 그날 난생 처음 서울에 올라왔다는 고등학교 1학년짜리 포항 토박이가 혼자 학원 근처 고시원에 머물며 유학 준비를 하겠다니, 나로서는 얼마나 의지가 굳은지도 확인해야 했다.
"불쑥 마음먹고 시작할 만큼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유학 갈 결심은 왜 했지?"
세준이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것은 친구의 유학이었다.
"나름대로 날리는 영어 실력으로 포항을 흔들던 몇몇 친구들이 있어요. 쑥스럽지만 우리끼리는 '포항 엘리트 그룹'이라고 불렀죠.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대학 갈 때까지 선의의 경쟁을 하리라 믿었는데……."
그랬던 친구가 자기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미국 보딩스쿨 입학 허가를 받아 한국을 뜬다고 했을 때 세준이는 경쟁 상대가 4차원의 세계로 빠져나가버린 듯한 황당함을 맛봤던 것이다.
"14년 살아오는 동안 전 유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죠. 갑작스러운 자극이었어요. 평소에 아버지께서도 유학을 가더라도 한국의 정서를 다 배우려면 대학까지 여기서 마치고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렇지만 이미 제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걸 눈치 채고 여러 날 고민하시더니 '너도 갈 테냐?' 하고 물으셨어요. 일주일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고는 그 다음날 '가겠습니다' 했죠. 아버지는 '너는 지금 떠나도 이미 확실한 대한민국 사람이다, 그렇지?' 하고 다짐하시면서 유학을 허락해주셨어요."
미국 조기유학에 필요한 자격시험인 토플과 SSAT(Secondary School Admission Test)를 준비시켜주는 학원이 포항에는 없어서, 먼저 떠난 친구에게 물어서 나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그날로 어머니는 포항으로 돌아가셨고 세준이는 대치동의 고시원에 들어갔다. 세준이 말로 '3개월 안에 아작을 내야' 할 상황이었다. 목표로 하는 보딩스쿨들의 원서 마감까지는 3개월밖에 안 남아 있었는데 세준이는 "토플이라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뚝심의 포항 청년 세준이는 ", 그것도 몰라요?"라고 무시하는 '공부 엄청 잘하는 서울 애들' 틈에 끼여서 석 달 만에 토플 600(CBT 환산 250)을 달성했다. 그러나 SSAT 결과는 목표에 못 미쳤다. 12개 보딩스쿨에 지원서를 냈고 어머니와 단 둘이 가이드도 없이 초행길인 미국 여행에 나섰다. 팸플릿으로만 보았던 여러 보딩스쿨의 현지답사 겸 인터뷰를 위한 여행이었다. 그 여행은 '무식해서 용감했던 인생 최고의 여행'으로 세준이 가슴에 새겨졌다.
10개 학교에서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 SSAT를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못 봤지만 결과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것에 대해 세준이는 인터뷰와 에세이에서 점수를 만회했을 것이라며 나름의 성공 요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제가 평소에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솜씨가 좀 있어요."
최종적으로 어느 학교를 택할지 선택에 필요한 객관적인 조언들은 어른들 몫이고, 아이들의 학교 고르는 기준에는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세준이는 따뜻하고 정감어린 분위기가 느껴졌던 로렌스빌에 끌린다고 했다.
세준이는 2003년 여름에 한국을 떠나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명문 보딩스쿨 '로렌스빌 스쿨' 10학년에 들어갔다.
"포항에 남아 있었다면요? 한국은 공부 좀 하는 애들한테는 죽어라고 시키니까 저도 열심히 했겠죠. 그렇지만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았을 거예요. 로렌스빌에서 해보니까 과학, 수학의 경우 과정에 차이는 있어도 어차피 배우는 내용이 비슷해요. 국어가 달라요. 한국에선 늘 이 시에서 이 낱말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적어놓고 외워야 했어요. 수능에 그 문제가 나온다면 바로 그 낱말이 정답이니까요. 미국에는 그런 게 없어서 좋았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건 아닌데.' '제 말이 맞습니다. 왜냐면'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줄곧 묻고 답할 수 있어요. 열려 있어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그러나 보딩스쿨의 토론식 수업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되기까지 어찌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을까. 그곳에도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았던' 나날은 있었다. 사흘을 고생고생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써서 제출한 작문 숙제가 D를 맞았을 때, 《햄릿》, 《햄릿》 주석서, 도서관 소장 《햄릿》 관련 서적을 '다 알아서 찾아 읽고' 토론할 준비를 해오라는 기절할 것 같은 숙제를 받았을 때, '멀어져가는 한국어와 다가오지 않는 영어' 사이에서 현기증을 느낄 때……. 그러다 너무 위기감이 몰려올 때는 '너희는 다 너희 언어로 보는데 나도 급하니 우선 내 언어로 보겠다'며 알라딘US(미국 현지 지사를 가지고 있는 국내 인터넷 서점)에 셰익스피어 한국어 번역본을 주문해서 읽고 내용을 파악한 후 급한 불부터 끄고 원서를 펴들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이런 배짱이 세준이의 큰 재산이다. 물론 정도가 지나치면 곤란하겠지만.
세준이는 로렌스빌에 들어간 뒤로는 룸메이트 없는 싱글 룸을 한 번도 선택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고시원 독방 생활의 고독에 지쳤기 때문이라나? 객지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는 동안 라면, 자장면 따위의 면식에 신물이 난 나머지 미역국, 갈비탕을 제 손으로 끓여먹었을 만큼 토종 입맛을 고수하던 녀석인데, 로렌스빌 기숙사 카페테리아 음식에도 그럭저럭 길들여진 모양이다. 아직도 인근 캘리포니아 롤 가게나 프린스턴의 한국 식당에서 포식할 기회가 생기면 너무나 반갑다고 내 앞에서 익살을 떨지만 말이다.
세준이의 로렌스빌 생활이 어느덧 3년째에 접어들었다. 12학년, 우리로 치면 '3 수험생'이다.
"저는 정치학과를 지망하고 아버지는 경제학과 진학을 원하십니다. 저는 한국인이 공부 마치고 나서도 미국에 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와서 정치를 하고 싶어요. 아버지는 '네가 미국 유학이 가능했다는 것 자체가 선택받은 계층이라는 것을 뜻하고, 정치를 하려면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게 너한테 가장 힘들 거'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그런 점에서 제가 어느 정도 믿을 만하니까 미국에 보내주셨을 테고, 저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유학 가서 느낀 건데 미국에서 공부하는 전체 유학생 가운데 80퍼센트는 한국에 꼭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없는 아이들인 것 같아요. 그러나 나머지 20퍼센트는 그 80퍼센트를 메우고도 남을 만큼 치열하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부해요. 서울에서 유학 준비하면서 또래 친구들 많이 사귀었는데, 서로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포항 촌놈이 잘나가는 서울 애들 보니까 샘도 나고 '저 애들이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조기유학생들이로구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진짜 진지하게 공부하는 애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미국 각지에 흩어져서 공부하다가 방학 때 서울에서 다시 만나 공부하면서 서로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죠. 그런 20퍼센트 유학생에게 제일 겁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바로 80퍼센트에게 쏟아지는 시선이에요."
세준이는 한 해 전부터 "2005 12 15일에는 하버드 조기 전형(early action)에 도전한다"고 공언했을 만큼 미래를 향해 치고 나가는 스타일의 아이다.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겠다던 유학 전의 각오를 다지고 다지더니 목표점을 하버드로 구체화한 것이다. 올 여름방학에는 귀국해서도 포항 고향집에 고작 일주일밖에 머물지 못했다. 우리의 '대입 수능 시험'에 해당하는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단어 총 정리와 지원하는 대학에 제출할 에세이 준비에 몸도 마음도 바빴기 때문이다. 곧장 서울로 올라와 미국 각지 학교에서 모여든 유학생들과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SAT 공부를 하는 한편, 국회와 외국인 노동자 병원 봉사 활동도 병행하며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쓰다가 8월말에 로렌스빌로 돌아갔다.
세준이는 2003년 여름에 한 중견 사진작가의 중국 여행에 조수 격으로 동행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백두산을 비롯한 동북 3성의 풍광을 부지런히 사진에 담은 덕분에 고등학생 수준 이상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 와서 그것을 토대로 조그마한 책자를 펴낼 준비도 했다. 그러나 스스로 그 결과물로 아이비리그 지원 서류를 장식할 의도는 아님을 강조한다.
"어차피 전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만 모인 곳에서 그런 책자 하나가 큰 어드밴티지가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이야기겠죠?"
'포항의 엘리트에서 대한민국의 엘리트로, 나아가 세계의 엘리트로!' 이것이 세준이의 모토다. 새해에 세계의 엘리트들 한가운데 우뚝 선 대학생 세준이를 만나게 될 것을 나는 기대한다.


스탠퍼드 4년이 키워준 벤처 정신, 기업가 정신

스탠퍼드 대학 경영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현영이는 이미 학부에서 MBA 스쿨(경영대학원)의 경영학 수업들을 열성적으로 수강해왔다.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이하 US 뉴스)가 해마다 조사해서 발표하는 대학원 평가에서 하버드와 늘 MBA 부문 수위를 다투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수업은 최소 3년 이상의 직장 경력을 갖춘 석사 과정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다. 수업의 빠른 진행과 높은 난이도는 학부 과목들과 엄연히 차이가 난다. 현영이는 학부생으로는 드물게 MBA 과정에 참여하여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 엘리트들과 머리를 맞대며 토론하는 특권을 누리는 학생이다. 물론 그런 특권을 차지하기까지 현영이가 그 어떤 학부 학생보다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스탠퍼드는 대학의 학풍 자체가 실용주의개방성을 표방해요. 스탠퍼드 교수들은 서부의 개척 정신에 걸맞게 정통적인 학문 영역에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이 될까 하는 현대인의 원초적 관심사에 더욱 초점을 맞추죠. 총장이 취임사에서 '서부 개척자 정신과 과감한 기업가 정신을 배우라'고 역설할 정도로 현실주의적인 분위기예요. 스탠퍼드 MBA의 가장 큰 특징도 창업(Entrepreneur)을 지향하는 학생들이 다른 MBA 스쿨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에요. 그들은 거리낌 없이 억만장자의 꿈을 이야기하고, 스탠퍼드 졸업생인 야후(Yahoo) 의 제리 양이나 선(SUN) 마이크로시스템의 스콧 맥닐리를 대화 주제로 삼으며 벤처 창업에 무한한 관심을 보여요. 커리큘럼 자체도 창업에 관련된 과목들이 많은데 이런 과목들의 수강 신청은 늘 정원을 초과하죠. MBA 수업에 참여하면 학교 밖에서는 말 한 번 붙여보기 힘든 각국의 성공 대열에 있는 비즈니스맨, 세계적인 기업의 간부들과 아무런 벽 없이 대화하며 친해질 수 있어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에요. 자연적으로 MBA 스쿨에는 수많은 사교성 친교 모임들이 생겨나죠. 함께 레저 활동도 즐기면서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도 확실하게 다지기 위한 모임들인 셈이에요."
현영이는 대학 때 맞은 두 번의 여름방학에 이미 미국의 톱 컨설팅 회사인 베인 앤 컴퍼니(Bain & Company)와 모니터 ㄱ그룹 (Monitor Group)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학부 과정 중에 MBA 과정에 참여하여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으로, 지식을 직접 활용하는 현장 실무 경험까지 확실하게 챙기는 현영이의 억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에 온 이후 애국심이 커졌어요. 한국의 초ㆍ중ㆍ고등학생 대부분은 지금도 한국이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에 견줘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혀 뒤지지 않는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굳게 믿을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미국을 직접 겪으면서 그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나마 삼성, 현대 같은 한국 브랜드가 알려진 덕택에 한국을 일본처럼 물건 좀 만들 줄 아는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삼성, 현대가 일본이나 대만 기업인 줄로 착각하는 미국인들도 아주 많은 게 현실이에요. 미국의 정치가들이 한국을 얼마나 등한시하는지, 얼마나 만만한 나라로 아는지 한국을 벗어나 미국에서 바라보고 겪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 냉정한 현실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칼을 뽑았다면 자기 소신껏 마음대로 휘두를 줄 아는 용기만이 진정한 호걸의 승리를 맛보게 해준다 배웠어요. 한국의 현재 위치를 뼈아프게 느꼈다면 행동하지 않고 입으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죠. 꿈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 꿈은 죽은 꿈이나 다름없죠. 기왕에 부모님 큰돈 쓰시게 하면서 미국 땅에서 공부할 바에야 21세기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서는 데에 주역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해야죠. 우리 조기유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미국 땅에서 살아남는 자립심을 키웠고, 다양한 인종과 어깨를 맞대고 경쟁하면서 글로벌한 경쟁력을 길렀어요. 여기에 한국 사회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줄 아는 통찰력을 갖춰서, 공부하는 동안에 미국 땅에 뿌린 달러를 배로 되찾아 고국에 돌려줘야죠. 10년 후 내가 한국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 고심하며 뛰는 유학생은 저 말고도 많을 거예요."
현영이는 왕년의 베스트셀러 유학 성공기 《7 7장》의 영향을 받은 조기유학 1세대다. 그 책이 장안에 화제가 되면서 저자 홍정욱 씨가 나온 '초트 로즈메리 홀(Choate Rosemary Hall)'이라는 보딩스쿨의 존재가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 그 전에는 한국에서 유학 관계자들 외에는 그 학교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보딩스쿨이라면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전통과 권위의 이름으로 학생들을 억압하는 감옥 같은 귀족 학교의 이미지나 떠올릴 정도였다. 홍정욱 씨가 1993년 그 책을 펴낸 후 '초트'의 입학 담당자로부터 "우리 학교에 지원하는 한국인 학생이 10배 이상 증가했고 그 학생들이 하나같이 《7 7장》이 지원 동기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감했었다고 토로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현영이 또한 유학 동기는 그 책에서 제공받았지만 '초트' 같은 명문 보딩스쿨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지금은 워낙 명문 사립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그게 가장 보편적인 선택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일단 조기유학을 갈 정도면 한국에서도 경제적으로 하이클래스라고 봐야겠죠. 한국에서 하이클래스니까 미국에서도 하이클래스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게 부모님들 마음인 거 같아요. 그렇지만 보딩스쿨은 미국에서도 경제력으로 상위 5퍼센트 이내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이지 전체가 다 보딩스쿨을 선망하는 것은 아니죠."
현영이는 필라델피아 소재의 가톨릭계 사립학교를 지원했다. 학비 부담도 줄어들고, 보딩스쿨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입학 요건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서 좋았다.
"사람들은 제가 조기유학생이고 스탠퍼드에 진학했다고 하면 명문 보딩스쿨에서 톱클래스를 달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닙니다. 단대부중 다닐 때부터 학구파라기보다는 음악, 운동, 춤에 관심이 많았어요. 친구들하고 놀기 좋아했고, 성적은 평소 십몇 등, 안 좋을 때는 이십몇 등까지도 해봤어요. 고등학교 때도 밴드 활동을 엄청나게 했어요. 남들 공부할 때 연주하고 돌아다니고."
현영이는 중3 1학기를 한국에서 마치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서 바로 우리의 중3에 해당하는 9학년 1학기로 편입했다. 유학 준비 과정이라는 게 없었던 셈이다. 준비 과정을 생략하고 떠난 유학생의 경우 대개는 반 년 정도의 랭귀지 스쿨 과정을 거치는데, 현영이는 '학교에서 직접 부딪치고 친구 사귀면서 해결하겠다'는 정신으로 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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