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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뱅 Startup Diary

처음보자마자 서슴없이 내게 다가온 아이 본문

일상

처음보자마자 서슴없이 내게 다가온 아이

넷뱅 2011.06.29 22:48

항상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저녁에 먹을 것을 사가는 편인데 감기 기운이 있어선지 아님 비가 보풀보풀 내리는 꿀꿀한 날씨 탓인지 입맛이 없어 오늘은 바로 곧장 집에 가려했다. 


홍콩에는 언덕이 많아 집으로 가는 길에도 항상 올라가는 계단이 많다.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한계단 한계단 오르는데 눈앞에 젖소 무늬의 고양이가 보였다.  길고양이라면 이렇게 사람이 자주 오다니는 계단 길에 있지 않기 마련인데 너무 신기했다.  고양이를 본 순간 피곤함이 싹 가셨다.  계속 서있는채로 그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그 고양이도 시선을 느꼈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 그 고양이는 나에게 절박한 눈빛을 보냈다. 

‘아 이사람이다’라는 마냥 내 두 다리를 강하게 스쳐지나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얘가 왜 이러는걸까. 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내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먹을 거라곤 보타렉신 감기약 밖에는 없었다.  약을 줄 수도 없고.   결국 나는 여태껏 올라오던 그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허겁지겁 내려가 근처 슈퍼마켓에 있는 직원에게 고양이 사료 코너가 어딨는지 물었다.  '저기요', '실례지만' 뭐 이런 말도 하지 않고 '고양이 사료 어디에요?' 라고 물으니 직원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애완동물 사료 코너 중에서 제일 비싼 연어, 스테이크, 참치 캔 세개를 사서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그 고양이가 없으면 안될텐데-걱정하면서.



다행히도 아직 그곳에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날 알아보곤 그 아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겁도 없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아 새끼인게 분명했다.  자세히 눈을 보니 아직 눈동자도 까맸다.  눈은 이렇게 맑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잘 먹질 못해 몸은 호리호리하고 씻지 못해 눈에 눈꼽이 여기저기 있었다. 


얼른 캔 하나를 까서 바닥에 내려 놓았다.   결국에는 세개 캔 다 까서 놓고 왔지만 연어 캔을 제일 좋아했다.  입이 비싸...무튼 한입 베어물고 내 눈치보고 또 한입 먹고 내 눈치보고 하는게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최대한 '마음껏 먹어도 돼'라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활짝 웃어주었다.  정말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진짜 맛있어서 그런건지  나중에는 얼굴을 땅에 박을 정도로 정신없이 먹었다. 


마지막으로 그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고양이는 울고 있었다.  깜짝 놀래서 다시 봤지만 역시나 울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길고양이의 현실은 어떠할까, 아까 그 새끼 고양이는 비오는 날에는 어디서 지낼까, 뭘 먹으면서 지낼까, 그리고 그 고양이처럼 이곳 저곳 전전긍긍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이렇게 하루종일 회사일, 나 자신 밖에는 모르고 살던 내게 이렇게 고양이가 잠시나마 의지해 주어서 또 그것을 외면하지 않아서 뿌듯하고 보람된 마음도 들고 하지만 시리얼 같은 사료가 아닌 군것질에 속하는 캔을 사다줘서 혹시 이제 그것만 찾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괜히 사주었나 하는 걱정도 들고.



만약 내일 또 그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 고양이와 친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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